55, 그때 그 시절에 그렇게(대야 수박화채) 55, 그때 그 시절에 그렇게(대야 수박화채)
주부독서연구소 밴드-권영심 작가가 썼던 그때, 그 시절 여름이 다가오자 아버지가 꼭 준비해놓는 게 있었다. 못 몇 개.. 주부독서연구소 밴드-권영심 작가가 썼던 그때, 그 시절 여름이 다가오자 아버지가 꼭 준비해놓는 게 있었다. 못 몇 개..
망치는 가게 공구함에 항상 있었고 대못도 있었는데, 그때 준비하는 대못은 아버지가 철물점에서 특별히 골라 가지고 왔다. 끝이 균등하고 일정하게 날카로운 것이었는데, 그 대못을 기름을 여러 번 발라 작은 대나무 석작에 넣어 보관하였다. 망치는 가게 공구함에 항상 있었고 대못도 있었는데, 그때 준비하는 대못은 아버지가 철물점에서 특별히 골라 가지고 왔다. 끝이 균등하고 일정하게 날카로운 것이었는데, 그 대못을 기름을 여러 번 발라 작은 대나무 석작에 넣어 보관하였다.
그 석작에 같이 들어갈 물건이 몇 개 있는데 크고 단단한 군수저와 오목한 바가지와 제법 큰 식도였다. 어떤 의식처럼 그것들을 준비했고, 우리는 그것을 수박 겉핥기라고 불렀다. 그 석작에 같이 들어갈 물건이 몇 개 있는데 크고 단단한 군수저와 오목한 바가지와 제법 큰 식도였다. 어떤 의식처럼 그것들을 준비했고, 우리는 그것을 수박 겉핥기라고 불렀다.
여름이 되어 초가을이 되어 수박이 사라질 때까지 수박바구리는 여름밤마다 거의 출동했다. 가게 문 닫는 날이나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수박하우스가 문을 열었는데, 우리 가족이 워낙 수박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주변 상인들 또한 그 시간을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되어 초가을이 되어 수박이 사라질 때까지 수박바구리는 여름밤마다 거의 출동했다. 가게 문 닫는 날이나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수박하우스가 문을 열었는데, 우리 가족이 워낙 수박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주변 상인들 또한 그 시간을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달리 더위를 피할 특별한 기구나 시설이 없던 그 시절 여름의 즐거움은 낮의 수영과 후지키, 여름 밤의 수박 파티였던 것 같다. 십여 분 걸으면 물 맑은 바다가 천지 빽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시로 바다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집에서 등목을 즐겼다. 지금과 달리 더위를 피할 특별한 기구나 시설이 없던 그 시절 여름의 즐거움은 낮의 수영과 후지키, 여름 밤의 수박 파티였던 것 같다. 십여 분 걸으면 물 맑은 바다가 천지 빽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시로 바다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집에서 등목을 즐겼다.
여자들은 부엌문에 물을 끼얹고 남자들은 시장 거리에서도 당당히 등을 돌리기도 했지만 아무도 나무라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금세 더워지고 땀이 등골로 흘렀지만, 정말 더위를 물리치는 건 한밤의 수박 파티였다. 여자들은 부엌문에 물을 끼얹고 남자들은 시장 거리에서도 당당히 등을 돌리기도 했지만 아무도 나무라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금세 더워지고 땀이 등골로 흘렀지만, 정말 더위를 물리치는 건 한밤의 수박 파티였다.
아이들도 기다렸다가 먹고 자려고 하는데 그 파티에 참석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소변을 참지 못해 이불에 실례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넣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끼어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도 기다렸다가 먹고 자려고 하는데 그 파티에 참석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소변을 참지 못해 이불에 실례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넣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끼어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가게가 철저히 매장이 비자 어디선가 수박이 여러 개 날아오고 큰 대야가 두 개 놓였다. 우리 가게 앞이 파티 장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준비된 수박바구리와 설탕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음을 깨는 기술이 꼭 필요했다. 가게가 철저히 매장이 비자 어디선가 수박이 여러 개 날아오고 큰 대야가 두 개 놓였다. 우리 가게 앞이 파티 장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준비된 수박바구리와 설탕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음을 깨는 기술이 꼭 필요했다.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자기들 할 일을 했다. 수박을 반으로 잘라 각각 군용 숟가락을 집어 수박 살을 도려내 다라이에 담았다. 군용 숟가락을 반쯤 넣고 돌리자 수박살이 마치 작은 공처럼 곱게 깎였다.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자기들 할 일을 했다. 수박을 반으로 잘라 각각 군용 숟가락을 집어 수박 살을 도려내 다라이에 담았다. 군용 숟가락을 반쯤 넣고 돌리자 수박살이 마치 작은 공처럼 곱게 깎였다.
남은 고기는 조금도 남기지 않고 덥석 긁어 대야에 부었고, 손이 빈 사람은 식도에서 수박 껍질을 얇게 벗겼다. 그 사이 일관된 얼음이 도착해 다른 대야에 놓이자 아버지는 대못 하나를 꺼내 지팡이로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남은 고기는 조금도 남기지 않고 덥석 긁어 대야에 부었고, 손이 빈 사람은 식도에서 수박 껍질을 얇게 벗겼다. 그 사이 일관된 얼음이 도착해 다른 대야에 놓이자 아버지는 대못 하나를 꺼내 지팡이로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아빠는 다른 매장에 대야를 끼고 앉아 얼음을 깨는데, 봐도 봐도 재미있어져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구경했다. 얼음이 그냥 깨지는 게 아니었어. 너무 크거나 작아도 안 되고 수박국까지 다 먹는 동안 남아 있을 정도의 크기여야 했다. 아빠는 다른 매장에 대야를 끼고 앉아 얼음을 깨는데, 봐도 봐도 재미있어져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구경했다. 얼음이 그냥 깨지는 게 아니었어. 너무 크거나 작아도 안 되고 수박국까지 다 먹는 동안 남아 있을 정도의 크기여야 했다.
그 사이에 생기는 작은 얼음을 손으로 잡고 와삭와삭 깨먹는 맛이 정말 좋았다. 아버지는 몇 개의 대못을 얼음 곳곳에 꽂아두고 지팡이로 내리쳤는데, 깨지는 얼음으로 인해 방향과 힘의 조절이 필요했다. 그 사이에 생기는 작은 얼음을 손으로 잡고 와삭와삭 깨먹는 맛이 정말 좋았다. 아버지는 몇 개의 대못을 얼음 곳곳에 꽂아두고 지팡이로 내리쳤는데, 깨지는 얼음으로 인해 방향과 힘의 조절이 필요했다.
이윽고 조각 얼음이 잔뜩 쌓여 그 위에 수박살을 쏟아 부었다. 바가지로 젓는 동안 어머니는 큰 컵에 설탕을 서너 번이나 아낌없이 넣었다. 요즘은 악! 하지만 그 시절에 그 정도의 당분 섭취는 너무나 필요한 영양제였다. 이윽고 조각 얼음이 잔뜩 쌓여 그 위에 수박살을 쏟아 부었다. 바가지로 젓는 동안 어머니는 큰 컵에 설탕을 서너 번이나 아낌없이 넣었다. 요즘은 악! 하지만 그 시절에 그 정도의 당분 섭취는 너무나 필요한 영양제였다.
사카린을 넣어 만들어 먹는 집이 대부분이던 그 시절 우리 집은 설탕이 오래 전이었다. 어머니의 설탕 사랑은 남달랐고,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다른 선물과 함께 설탕 봉지를 꼭 챙겨 와야 환대를 받았다. 창고나 다락에 설탕봉지나 봉지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이 자랑거리였던 시절이었다. 사카린을 넣어 만들어 먹는 집이 대부분이던 그 시절 우리 집은 설탕이 오래 전이었다. 어머니의 설탕 사랑은 남달랐고,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다른 선물과 함께 설탕 봉지를 꼭 챙겨 와야 환대를 받았다. 창고나 다락에 설탕봉지나 봉지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이 자랑거리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만든 수박화채의 달콤하고 시원함… 그렇게 맛있는 수박화채를 나는 어른이 되어 먹어본 적이 없다. 어른들은 수박 화채를 안주 삼아 소주 5병을 마셨고 다른 안주도 있었다. 그렇게 만든 수박화채의 달콤하고 시원함… 그렇게 맛있는 수박화채를 나는 어른이 되어 먹어본 적이 없다. 어른들은 수박 화채를 안주 삼아 소주 5병을 마셨고 다른 안주도 있었다.
껍질을 벗긴 수박의 흰자위를 마치 오이처럼 썰어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남은 것은 누구나 가져가고 다음날 반찬이 되어 상에 올랐다.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일이 없었다. 껍질을 벗긴 수박의 흰자위를 마치 오이처럼 썰어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남은 것은 누구나 가져가고 다음날 반찬이 되어 상에 올랐다.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일이 없었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고 나면 파티는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내일을 살기 위해 잠을 청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뒷정리를 하고 아버지는 못과 도구를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수박 양동이에 보관했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고 나면 파티는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내일을 살기 위해 잠을 청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뒷정리를 하고 아버지는 못과 도구를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수박 양동이에 보관했다.
나는 어디를 가나 사소하고 사소한 도구나 집기 등을 잘 챙겨가기로 유명한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것일 것이다. 매년 여름이 찾아오고 수박은 사계절을 가리지 않지만 나는 수박 화채를 만들 수 없다. 너무나도 그리운 기억이 선명해 그 기억만으로도 여름을 나기에 충분하다. 나는 어디를 가나 사소하고 사소한 도구나 집기 등을 잘 챙겨가기로 유명한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것일 것이다. 매년 여름이 찾아오고 수박은 사계절을 가리지 않지만 나는 수박 화채를 만들 수 없다. 너무나도 그리운 기억이 선명해 그 기억만으로도 여름을 나기에 충분하다.
요즘 저의 주식은 수박입니다. 얼마나 저렴해졌는지 7000원짜리 하나 사서 크게 잘라 숟가락으로 떠먹고 콩국을 조금 마시는 거예요 헬스장 식사예요. 과일 중에서 수박과 사과를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노란 인도 사과도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그 시절이 설탕이 비싼 시절이라 대부분 당원들이 달콤한 맛을 냈지만 우리 엄마의 설탕 사랑은 정말 대단했어요. 아무리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와도 설탕 봉지가 없으면 어머니의 입술은 울퉁불퉁했어요. 설탕 스프를 몸에 영양이 되는 것이라며 스프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던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 몸에 사무치고 그립습니다. 요즘 저의 주식은 수박입니다. 얼마나 저렴해졌는지 7000원짜리 하나 사서 크게 잘라 숟가락으로 떠먹고 콩국을 조금 마시는 거예요 헬스장 식사예요. 과일 중에서 수박과 사과를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노란 인도 사과도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그 시절이 설탕이 비싼 시절이라 대부분 당원들이 달콤한 맛을 냈지만 우리 엄마의 설탕 사랑은 정말 대단했어요. 아무리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와도 설탕 봉지가 없으면 어머니의 입술은 울퉁불퉁했어요. 설탕 스프를 몸에 영양이 되는 것이라며 스프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던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 몸에 사무치고 그립습니다.